지난 7월 우리나라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었다는 소식에 국내는 물론 전 세계가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세계 각국의 연구소는 사전 공개된 논문을 참고해 상온 초전도체 LK-99를 직접 만들어 보며 검증에 나섰고, 국내 여러 커뮤니티에는 초전도체와 관련한 각종 밈(Meme)이 쏟아져 나왔다. 초전도체 관련 테마주는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기도 했다. 사전 공개 논문이 나온 지 약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상온 초전도체는 뜨거운 감자다. 상온 초전도체, 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도 뜨거운 걸까?
초전도체(Superconductor)란 무엇인가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상태를 초전도라고 하고,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은 초전도체라고 한다. 초전도체의 두 가지 특징은 아래와 같다.
- 초전도 현상 :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현상
- 반자성 현상: 마이스너 효과라고도 불리며, 외부 자기장에 반발하는 현상이다. 초전도체 내부에는 어떠한 자기장도 존재할 수 없기에, 초전도체는 모든 자기장을 밀어낸다.
- ⏳ 초전도체의 역사 : 초전도체는 1911년 네덜란드의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라는 물리학자가 처음 발견했다. 영하 269도에서 수은이 초전도 현상을 띄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이후 극저온 상태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은 단 한 번도 찾을 수 없었다.
- 🧐 초전도체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 : 초전도체가 처음 등장한 이후 모든 초전도체는 극저온 상태에서만 초전도 현상을 보였다. 따라서 연구팀들은 극저온이 되면 물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에 연구를 집중했다. 그러던 중 바딘, 쿠퍼, 슈리퍼라는 3명의 과학자가 극저온에서 초전도체를 구성하는 전자가 ‘쿠퍼 쌍’을 이뤄 움직인다는 걸 밝혀냈다(BCS 이론). 이후 연구팀들은 원자 단위에서 배열을 바꿔가며 초전도체를 연구하고 있는데, 원자의 배열에는 수도 없이 많은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에 초전도체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운이 필요한 것이다.
- 🚊 초전도체는 어디 활용되나? : 초전도체는 먼저 자기부상열차에 이용할 수 있다. 현재 자기부상열차를 떠오르게 만들기 위해 아주 강한 자석을 사용하는데, 초전도체를 쓰면 지금보다도 더 높이 열차를 띄울 수 있고, 이는 더 빠른 자기부상열차를 가능하게 한다. 이외에도 초전도체는 MRI에도 사용된다. MRI 기계는 초전도 자석으로 둘러싸여 있어 환자의 몸에 흐르는 약한 자성을 파악해 사진으로 보여준다. 덕분에 우리 몸속을 훤히 볼 수 있는 것이다.
✅ 고온 초전도체라는 말도 있던데?
고온 초전도체에서 고온은 -243도 이상의 온도를 의미한다. BCS 이론에서는 초전도체는 무조건 -243도 이하의 온도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겨졌지만, 20세기 말 -243도 이상의 온도에서 존재하는 초전도체가 발견되며 고온 초전도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그러나 고온 초전도체 역시 -100도 내외의 저온 상태에서 초전도체의 성질을 갖는다. 이전의 극저온 상태 초전도체보다 ‘상대적으로’ 고온이기 때문에 고온 초전도체라는 이름이 붙은 것.
“상온 초전도체”가 중요한 이유는 뭘까?
앞서 살펴봤듯 초전도체는 기본적으로 극저온 상태 또는 고압 상태에서 초전도 성질을 가진다. 그래서 초전도체를 일상에 이용하려면 극저온 상태를 만들어야 하고, 여기엔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런 초전도체를 상온에서도 구현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 저렴한 전기 요금 : 현재 전국 방방곡곡 전기를 보낼 때 사용하는 전선은 전기저항이 존재한다. 송전 과정에서 낭비되는 전기도 어마어마하다. 만약 상온 초전도체가 상용화되고, 전선을 모두 초전도체로 바꾸면 송전 과정에서 낭비되는 전기가 0에 수렴할 것이다. 낭비되는 전기가 없으니 전기 요금이 저렴해진다.
- 💻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는 노트북 : 노트북을 오래 쓰다 보면 뜨거워지는 발열 현상도 옛날 일이 된다. 노트북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전기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기 때문인데, 초전도체는 전기 에너지를 하나도 낭비하지 않기에 열 발생량도 매우 적다. 노트북뿐만 아니라 여러 가전제품, 나아가 데이터 센터 등에서도 발열 문제가 해결되며 상상 그 이상의 산업적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 🚄 서울과 부산이 40분? : 상온 초전도체로 만든 자기부상열차는 이론적으로 시속 500km로 달릴 수 있다. 서울과 부산을 40분 만에 이동할 수 있는 꿈의 교통수단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것.
- 🩺 저렴한 MRI: MRI 검사 비용도 확연히 줄어들 수 있다. 현재 MRI는 초전도 자석을 구현하기 위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고, 고가의 장비를 활용해야 해 검사비가 비싼데, 상온 초전도체가 상용화되면 MRI 검사에 필요한 전력 소모량이 줄고, 검사 비용이 저렴해질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들은 상온 초전도체가 상용화되면 겪게 될 변화의 극히 일부다. 상온 초전도체는 반도체는 물론 CPU, 데이터센터, 인공지능, 의료기기 등 여러 산업을 송두리째 바꾸며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물질이라 하겠다.
“LK-99”, 상온 초전도체가 맞는가?
지난 7월, 우리나라의 퀀텀에너지연구소 및 한양대 연구진이 상온 초전도체를 발견했다는 논문을 공개했다. 이 논문은 아직 동료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공개됐는데, 공개 직후부터 최근까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 ⚗️ LK-99란 : LK-99는 납, 구리, 인회석 등을 녹인 후 합성한 물질이다. 연구진은 20년 동안 여러 물질을 섞어가며 초전도체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고, LK-99가 상온에서도 초전도성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 🎓 학계의 반응은? : 논문이 공개된 후 세계 각국의 여러 연구팀이 초전도체 연구에 나섰는데, 미국의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는 공개 초기 LK-99의 초전도성에 기대감을 갖고 낙관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며, 그럼에도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과 인도의 연구진은 LK-99를 직접 구현했다고 발표했으나, 이들이 구현한 물질은 초전도체로 보기에는 근거도 부족하고 신뢰성이 떨어져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 🤔 아닌 거 같은데… : 시간이 지날수록 LK-99가 상온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연구진은 LK-99가 초전도체가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세계 3대 학술지에 속하는 네이처와 사이언스 모두 LK-99의 초전도성 여부에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LK-99가 초전도체가 아니라고는 확정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LK-99가 초전도체라는 근거가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 🇰🇷 퀀텀에너지연구소의 반응은? : LK-99를 개발한 퀀텀에너지연구소는 이르면 8월말 쯤 논문 심사가 종료되면 각종 데이터와 이론적 체계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때까지는 LK-99에 대한 확답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2020년에도 상온 초전도체가 발표됐다?
2020년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팀은 상온 초전도체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데이터 조작이 드러나 논문이 취소된 바 있다. 이후에도 매년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는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내용이 업로드되지만, 실제로 구현된 건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상온 초전도체 때문에 증시는 난리가 났다!
LK-99 논문이 사전 공개된 이후 상온 초전도체와 연관이 있을 법한 기업의 주식들이 초전도체 관련주로 묶였다. 그리고 상온 초전도체가 실제로 구현될 수 있다는 소식이 나오는 족족 주가가 급등했다. 그러나 회의론이 점점 힘을 얻으면서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 🔍 어떤 주식? : 신성델타테크는 퀀텀에너지연구소의 지분을 보유한 엘앤에스벤처캐피탈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관련주로 분류됐다. 초전도마그네트 개발에 나섰던 덕성도 관련주로 분류됐고, 초전도선재 사업을 영위하는 고려제강 역시 관련주가 됐다. 한편 초전도선재(초전도체를 사용이 쉽게 선의 형태로 가공한 소재) 기술을 보유한 서남은 퀀텀에너지연구소와 관련이 없다며 관련주로 묶였다가 이를 부인하는 사태도 있었다.
- 💸 회의론에도 이어지는 투자 : 학계에서부터 LK-99에 대한 회의론이 퍼지고 있음에도 초전도체 관련주 투자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단타 매매로 수익을 내고자 하는 투자자들이 몰리며 급등과 급락이 이어졌다. 초전도체 관련주에 대한 알고리즘 매매가 대량으로 이뤄져 급등락이 나타났다는 주장도 있다. 퀀텀에너지연구소의 발표 전까지는 급등락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 🧐 관련주가 맞나? : 초전도체 관련주로 분류된 종목이 엄밀히는 관련주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퀀텀에너지연구소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기업이 초전도체 관련주로 분류된 사례도 많다. 또한 아직 연구 초기 단계인 상온 초전도체는 그 어떤 기업도 현재 사업에 반영하지 못했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관련주가 벌써 나올 수 없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 알고리즘 매매?
알고리즘 매매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특정 매매 기법을 자동으로 실행하도록 설정해 두는 투자 기법이다. 예를 들어 ‘초전도체 관련주 가격이 평균 n% 하락하면 ㅇㅇ기업 주식을 m주 매입해라’ 같은 규칙을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만들어 두는 것이다.
상온 초전도체는 개발하는 순간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임팩트가 크고 중요한 물질이다. 그러나 회의론이 퍼져 나가고 있는 상황을 봤을 때 상온 초전도체는 2023년까지는 여전히 꿈의 물질로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LK-99가 상온 초전도체의 특성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LK-99를 계기로 세계의 많은 연구진이 LK-99는 물론 상온 초전도체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 우리 삶을 바꿔놓을 꿈의 물질, 상온 초전도체 개발 소식을 몇 년 안에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이 언제 이토록 과학으로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