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이야기, ‘반도체 전쟁 50년사’

50년 전 시작된 반도체 산업은 잠시 한눈을 팔면 주도권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 버리는 그런 산업이다. 자동차·조선·화학 산업에는 오랜 강자들이 있지만 반도체 시장은 다르다. 일본 반도체 산업을 무너뜨린 플라자 합의부터 미국의 화웨이 제재, 칩4 동맹까지 반세기에 걸친 반도체 전쟁사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



반도체 산업의 시작, ‘페어차일드반도체’

페어차일드반도체
페어차일드반도체를 설립한 8인의 배신자들

반도체 산업은 1950년대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반도체의 아버지’ 윌리엄 쇼클리가 1957년 캘리포니아 팰로앨토 지역에 ‘쇼클리 반도체연구소’를 세운 것이 그 시작이다. AT&T의 벨연구소(뉴욕)를 뛰쳐나와 시작한 창업이었다.

쇼클리는 반도체 분야에 재능 있는 천재 개발자들을 모아 회사를 키워 가려고 했다. 하지만 쇼클리 특유의 괴팍한 성격을 다른 천재들은 버텨 내지 못했다. 8명의 연구원들이 연구소에서 ‘탈출’한다. 반도체 역사에서 유명한 ‘8인의 배신자 사건’이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 반도체 관련 기업을 세웠다. ‘페어차일드반도체’였다. 본격적인 반도체 산업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반도체 기업으로 성공했다. 1967년 한국에 조립 공장을 열기도 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는 산호세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세계최초로 집적회로를 상용화한 기업이다. 

1957년도에 창업해서 1960년대에 미국 IT의 상징인 실리콘밸리의 혁신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전 세계에 구천명의 직원이 있다.

페어차일드가 성공하자 이 회사 출신들은 또다시 회사를 나와 줄줄이 팰로앨토 지역에 반도체 회사를 설립했다. 인텔·AMD·모토로라·내셔널세미컨덕터 등이다. 이곳이 실리콘밸리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71년이다. 반도체의 원료인 실리콘을 밸리 앞에 붙였다.

1960년대 미국 반도체 산업은 호황을 맞게 되고 반도체는 ‘첨단 산업의 쌀’로 불리게 된다. 미국의 전성기를 이끈 회사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와 인텔 등이다. AT&T에서 반도체 관련 특허를 사들인 TI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줄곧 업계 선두권을 유지했다.

TI의 무기는 집적회로(IC)였다. TI는 트랜지스터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가진 IC를 최초로 개발한 기업이다. TI는 이후 IC를 채용한 이후 휴대용 계산기,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을 개발했고 가전제품·컴퓨터통신 등까지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무어의 법칙’으로 알려진 고든 무어 등이 창업한 인텔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개척했다. 1970년대 초 세계 최초 D램 개발에 성공하고 시장을 장악한다. 1974년 D램 시장점유율은 90%에 육박했다. 하지만 미국 반도체의 전성기는 황금 자본주의 시대가 저물며 막을 내리기 시작한다.


80년대 게임 체인저 ‘일본’

반도체 산업 이야기, 반도체 패권 다툼

미국이 주도권을 잡던 시장에 뛰어든 일본은 제조 기술력을 앞세워 치고 올라갔다. 반도체 경쟁력은 수율이 좌우한다. 100개의 제품을 제조했을 때 제대로 된 제품이 90개가 나오면 수율 90%라고 한다.

계기는 두 차례 오일쇼크였다. 수요가 줄자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움츠러들었다. 불황에 과감히 투자를 할 여력도, 의지도 없었다. 일찌감치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은 이를 기회로 보고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한국의 재벌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어 계열사를 통한 투자가 가능했다. 정부도 지원에 나섰다.

반도체, 특히 D램 반도체 사업의 성장은 투자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 좋은 장비와 연구·개발(R&D) 투자가 성과로 이어지는 산업이다. 여기에 일본 특유의 제조 기술력을 접목해 수율을 끌어올리고 가격을 낮췄다.

일본 정부도 지원에 나섰다. 외국 기업으로부터 보호하고 각종 지원 정책도 내놓았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쏟아부은 돈만 1980년부터 1985년까지 20억 달러(간접 지원 포함)에 달한다.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일본 기업들은 순식간에 D램 시장을 장악했다. 1980년대는 일본의 시대였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일본 반도체는 아무도 넘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본전기(NEC)·도시바·히타치·후지쯔·미쓰비시·마쓰시타 등 6인방이 그 주인공이었다.

NEC는 1985년 매출 21억 달러에서 1990년 48억 달러까지 늘리며 반도체 1위 자리에 올랐다. 

1990년에는 NEC·도시바·히타치 등 일본 기업이 상위 3위까지 휩쓸었다. 

도시바는 1985년 매출 5위(15억 달러)에서 1990년 2위(48억 달러)로 올라서며 미국의 주요 기업들을 뛰어넘었다. 

반면 일본의 부상 전까지 업계 1위를 유지해 온 미국의 TI는 8위로 주저앉았다.

시장점유율도 요동쳤다. 1980년 기준 미국 기업의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60% 이상, 일본은 30%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1987년 일본 기업의 점유율은 80%를 돌파했고 미국은 10%까지 추락했다.

이런 상황에 반도체 과잉 공급 현상까지 발생하자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며 미국 기업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개척하고 한때 점유율 89%를 기록했던 인텔은 1985년 D램 사업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TI는 사업을 축소하기 위해 대규모 해고를 진행했고 내셔널세미컨덕터와 모토로라 등 대부분의 미국 반도체 기업은 생산 라인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운영 규모를 줄였다.

미국 반도체가 일본에 패권을 내준 또 하나의 요인으로 과도한 군수 산업 의존을 꼽는 학자들도 있다. 당시 미국 반도체 기업의 가장 큰 고객은 미국 국방부와 항공우주국(NASA)이었다. 국가에 납품하면 생산성보다 성능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미국 반도체 기업의 이 낮은 생산성을 기회로 파고든 게 일본이었던 것이다.


미국 vs 일본, 첫번째 반도체 패권 다툼

플라자 합의
일본 잃어버린 30년의 서막, ‘플라자합의’

일본 기업인들의 과감한 투자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일본 반도체 산업이 미국을 장악한 것은 1980년대 초였다. 1981년 일본 반도체는 미국 시장의 70%를 차지했다. 

미국 반도체 회사들은 정부로 달려갔다. 미국반도체협회는 일본을 이대로 두면 미국 반도체 기업은 다 망한다며 제재해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 정부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반도체 산업이 전자 산업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나라가 미국이었다.

레이건 행정부(1980~1989년)는 일본을 상대로 압박을 시작한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상무부에 일본의 덤핑 조사를 명령했다. D램을 부당한 가격에 매매하고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같은 시기 미국 마이크론은 NEC·히타치·미쓰비시·도시바 등 일본의 반도체 기업 7개를 상대로 반덤핑 소송을 냈다.

일본 경제를 잃어 버린 30년에 빠지게 한 ‘플라자 합의’도 이 시기에 나왔다. 1985년 미국·프랑스·독일·영국·일본 등 G5 재무장관이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환율을 조정하는 합의를 진행했다.

달러 강세를 멈추기 위해 일본 엔화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플라자 합의로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자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다시 높아졌고 엔고 현상이 나타나자 일본 반도체 기업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미국 정부와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을 맺는다. 일본 시장에 미국산 반도체 수입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정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듬해 일본이 제삼국에서 덤핑 문제를 일으켜 반도체 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통상무역법 301조를 앞세워 추가 보복 조치를 시행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손해 배상 규모를 3억 달러로 책정하고 일본 기업에 대한 보복 관세를 발표했다. 당시 일본을 향한 수차례의 통상 압박에도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을 회복하지 못하던 미국은 이를 기회로 삼아 1996년까지 이어지는 2차, 3차 미일 반도체 협정을 추가로 체결했다.

같은 시기(1992년) 한국 반도체에 대해서도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지만 관세율이 높지 않아 한국 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은 1990년대 들어서며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을 회복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미국의 압박으로 타격을 받고 몰락의 길에 접어든다. 반도체 산업이 기업 비즈니스이기도 하지만 국가 비즈니스이자 ‘핵심 산업’이라는 것을 확인 시켜준 사건이다.


일본의 부진 속 라이징스타 탄생, ‘삼성전자’, ‘TSMC’

반도체 삼성전자 TSMC

결국 1992년 인텔은 일본의 NEC에서 세계 반도체 시장 1위를 빼앗아 온다. 1992년은 ‘일본의 잃어 버린 30년’이 시작되는 해이기도 하다. 반도체 산업의 패권 변동은 오일쇼크에 이어 잃어버린 30년과 같은 대규모 경제적 변화와 함께 일어날 조짐을 보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장기간 세계 반도체 1위 자리에 군림했던 NEC의 추락은 극적이다. 1995년 2위, 2000년 3위로 떨어졌고 2006년 10위까지 밀려난 이후 상위 10위권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1990년 세계 10위 가운데 6개를 차지했던 일본 기업은 2000년 3개로 줄었다. 미국은 1990년 이후 인텔·모토로라·TI를 중심으로 상위권에 오르게 된 반면 NEC·도시바·히타치 등은 순위가 하락했다.

미국은 역습에 나섰다. 인텔은 메모리 사업 철수의 여파로 1987년 10위까지 밀려났지만 미국 정부가 일본을 압박하면서 1989년 8위, 1991년 3위 등으로 수직 상승했다. 마침내 1992년 NEC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1990년대 초 삼성전자가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을 누리며 힘을 비축한 삼성전자의 약진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격랑으로 몰아넣을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삼성전자는 일본 기업들에는 ‘저승사자’였다.

삼성은 1974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동양방송 이사였던 이건희는 아버지 이병철 회장에게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건희는 삼성전자 주식을 판 돈으로 파산 직전에 몰린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삼성반도체의 출발이었다. 미국과 일본 등에 비해 27년가량 늦은 출발이었다. 이후 10년 가까이 고전했다.

일본 기업들은 삼성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새제품을 내놓을 때만 되면 가격을 후려쳤다. 후발 주자들을 견제하는 유력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기술 격차를 점차 줄여 오던 삼성전자는 1990년대 초부터 판을 흔들기 시작한다.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면서 일본의 기술 수준을 넘어섰다. 이후 256M D램(1994년), 1GB D램(1996년) 등을 꾸준히 발표하며 메모리 반도체의 선두 자리로 올라섰다.

세계 반도체업계 순위는 삼성전자가 1993년 처음 10위권 내(7위)에 진입했고 현대전자는 1995년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삼성전자는 2000년 4위, 2002년 2위에 오른다. 이후 삼성전자는 인텔에 이어 2위 자리를 장기간 유지했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순위에서 사라졌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 외에도 일본 반도체 기업들도 미국과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값싼 D램이 필요한 PC의 시대가 왔지만 특유의 장인 정신 때문에 고성능 제품에 집착했다.

수명 5년짜리 반도체가 필요한 통신 칩도 20년짜리로 단단하게 만들어 비싸게 팔려니 팔릴 리 없었다. 또 일본 제조업의 전성기를 이끌던 창업 세대들이 사라진 것은 기업 리더십의 공백 현상을 낳았다.

여기에 정부의 인위적 구조 조정 등 헛발질까지 더해져 반도체 왕국은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이 시기 급부상한 또 다른 나라는 ‘대만’이다. 대만은 새로운 길을 찾았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로 후발 주자에 돌아갈 기회가 적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위탁 생산’에 주목했다.

미국 TI 출신의 모리스 창 대만 산업기술연구원장은 대만 정부와 함께 1987년 파운드리 회사 ‘TSMC’를 설립했다. 반도체 기업이 생산 시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지 않아도 사업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게 TSMC의 사업 모델이다.

이 사업 모델이 바로 ‘팹리스(fabless)’다. 설계 실력만 있다면 생산 라인을 만들지 않고도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은 역사가 오래된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회사들에 매력적이었다. 반도체 산업에서 TSMC의 영향력의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메모리 ‘치킨 게임 시대’의 시작

메모리 반도체 치킨 게임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의 반도체 시장은 이른바 ‘메모리 치킨 게임’의 시대다.

치킨 게임은 어떤 문제에 대해 양보 없이 한쪽이 질 때까지 극한으로 치닫는 게임을 의미한다.

1950년대 미국 갱 집단이 용감함을 과시하기 위해 진행한 자동차 게임에서 유래됐다. 서로 다른 갱에 속한 두 사람이 각각의 자동차를 타고 정면으로 달리는데 먼저 핸들을 꺾어 피하는 사람이 치킨(겁쟁이)이라는 뜻이다.

첫 치킨 게임은 2007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 D램 기업들이 생산량을 대폭 늘리면서 시작됐다. 반도체 초과 공급 현상이 나타나자 D램 가격이 폭락했다. 당시 512MB D램 가격은 3~4년 전보다 10분의 1로 추락한 0.5달러까지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당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후발 주자인 난야·마이크론 등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골든 프라이스’ 전략을 펼친 것으로 봤다. 후발 주자보다 생산 규모가 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이들 사업에 제동을 건 셈이다.

골든 프라이스 전략은 원가 경쟁력을 보유한 회사가 공급량 또는 공급가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통제해 경쟁사를 흔드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칩 한 개당 생산 원가 1.2달러에 생산하고 하이닉스가 1.3달러에 생산한다고 가정해 보자.

다른 기업들은 대략 1.7달러가 원가라고 할때 삼성전자는 1.3달러로 가격을 맞춘다. 삼성전자는 이익을 보고 하이닉스는 손익 분기점을 겨우 맞추고 다른 기업들은 적자를 보게 된다.

적자가 나면 대규모 투자가 불가능하고 이는 반도체 사이클이 호황에 접어들어도 제품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게 된다. 특정 기업이 시장에서 사라지면 살아남은 기업들은 잔치를 벌일 수 있게 된다.

D램 가격을 올리고 시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삼성·SK하이닉스 등 점유율이 높은 주요 기업들이 공급 물량을 줄여야 했지만 이들 기업은 감산하지 않았다. 당장 타격을 받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메모리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 시기를 버텨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2007년 초부터 시작된 치킨 게임은 2008년 말까지 약 2년간 지속됐다. 먼저 독일의 반도체 회사 ‘키몬다’가 무너졌다. 키몬다는 유럽 반도체의 강자 인피니언의 자회사로, 한때 D램 시장에서 2위까지 올랐던 기업이다.

하지만 치킨 게임이 시작되자 시장점유율이 5% 아래까지 떨어졌다. 키몬다는 2007년 3분기~2008년 4분기 누적 적자가 25억 유로(약 3조3800억원)까지 치솟으면서 결국 제품 생산을 완전 중단하고 2009년 1월 파산 보호 신청을 냈다.

키몬다뿐만이 아니다. 대만의 파워칩·프로모스·난야·이노테라 등도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면서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치킨 게임이 마무리된 2009년 말 처음으로 세계 메모리 시장점유율을 56.4%까지 끌어올리며 ‘승자’가 됐다.

그런데 이 것이 끝이 아니었다.

불과 1년 후 2차 치킨 게임이 시작됐다. 2010년 후반부터 최상위권 메모리 기업들은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낸드플래시 수요가 증가하면서 반도체업계에 생산 라인을 증설하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컴퓨터 저장 매체가 기존 하드디스크에서 낸드플래시를 채용한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로 바뀌던 시기다.

당시 업계 1~3위인 삼성전자·도시바·SK하이닉스 모두 투자를 확대했다. 2011년 일본 도시바가 낸드 공장을 증설했고 삼성전자도 2012년 중국 낸드 공장 신설, 한국 낸드 공장 증설 등을 시도했다. SK하이닉스 역시 낸드 증설에 동참했다.

대규모 투자 후 물량이 늘자 또다시 과잉 공급 현상이 발생했고 가격이 하락했다. 물량이 늘어난 낸드플래시 메모리뿐만 아니라 D램까지 가격 하락이 시작됐다.

이 치킨 게임에선 일본 ‘엘피다’가 무너졌다. 엘피다는 일본의 마지막 D램 기업이었다. 경영난에 처한 NEC와 히타치가 2000년 D램사업부를 통합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미쓰비시 D램사업부도 여기에 갖다 붙였다.

한때 삼성전자·하이닉스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회사가 더이상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출신 회사 직원 간 불화도 있었다. 인위적 구조 조정의 실패였다.

이들이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았다. 첫 치킨 게임이 진행된 2009년에도 수익성이 악화해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기사회생했다. 엘피다는 당시 일본 정부에서 300억 엔의 공적 자금뿐만 아니라 4개 은행의 채권단에서도 1000억 엔의 융자를 지원받은 바 있다.

하지만 또다시 메모리 가격이 추락하자 결국 2012년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엘피다는 또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엘피다는 2013년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되며 반도체 역사에서 사라진다.

왕국의 몰락이다.


미국 vs 중국, 반도체 전쟁 두번째 막이 올랐다

반도체 칩4 동맹

처절한 치킨 게임이 마무리된 2017년부터 반도체 시장은 슈퍼 사이클(장기 호황)에 접어든다. 2019년 일시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업황 하락세가 나타났지만 2020년 회복되면서 2021년 초까지 호황이 이어졌다.

실제 삼성전자는 2017년 53조65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이후 슈퍼 사이클의 정점으로 꼽히는 2018년 58조89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최대 실적을 써냈다.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2017년 13조7213억원에서 이듬해 20조8438억원으로 뛰었다.

반도체 전쟁의 역사는 승자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몸집을 키우겠다며 참전을 선언했다.

2015년 중국은 ‘중국 제조 2025’ 전략을 발표했다. 

반도체 대표 기업을 키우고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이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 수준(2020년 기준)이다.

중국은 2021년 기준 인구 14억5000만 명을 기록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만큼 내수를 키워 반도체 산업에서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중국의 반도체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2022년 6월 블룸버그는 지난 1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한 반도체 기업 20곳을 선정해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19개가 중국 기업으로 나타났다. 상하이 풀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프리마리우스 테크놀로지스 등이다. 블룸버그는 중국의 반도체 투자 확대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굴기에 세계 반도체 산업은 긴장했고 다시 미국이 나섰다. 화웨이를 포함한 중국 IT 기업의 글로벌 입지가 커지자 미국 정부가 이들의 성장을 저지하기 위해 반도체 제재를 시작했다.

미국 상무부가 2020년 발표한 ‘화웨이 제재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기술의 직접적 결과물인 반도체를 중국 기업이 취득하는 것을 막겠다는 내용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당시 화웨이의 반도체 구매량(2019년 기준)은 208억 달러(약 25조6000억원)로 애플과 삼성전자에 이어 3위였다.

화웨이는 그간 인텔·퀄컴·TSMC 등에서 반도체 부품을 수급해 완제품을 생산해 왔지만 이번 조치로 미국이 특허를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 핵심 부품은 가져올 수 없게 됐다. 미국 내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의 거래에도 이번 제재가 적용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제재 이후 중국 반도체는 더욱 성장했다. 반도체 구매가 어려워지자 이들은 자체 생산 등 내수 활성화 쪽으로 계획을 틀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의 몸집이 더욱 커졌다.

특히 화웨이는 과거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아류 작을 판매하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미국 제재 이후 반도체 투자를 확대하며 ‘반도체 종합 회사’로 변모했다.

2021년 반도체 후공정 전문 회사 ‘화웨이정밀제조유한공사’를 설립하고 중국 내 반도체 회사 50곳 이상에 투자를 이어 오고 있다. 또한 중국 우한시에 자체 파운드리 생산 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여러 시도에도 중국이 지속 성장하자 2022년 3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대만·일본 등에 ‘칩4 동맹’을 요청했다. 반도체 빅 플레이어를 보유한 국가 간 동맹을 맺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시도다.

미국이 자체적으로는 중국 압박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우방국들과 함께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을 몰아낼 미래 전략을 짜겠다는 것이 칩4 동맹의 핵심이다.

미국은 이와 함께 또 하나의 카드를 내밀었다.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아예 ‘본토’로 이전시키겠다는 게획이다. 미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미국 내 반도체 생산 라인을 지으면 25%의 세액을 감면해 주는 칩스법(반도체와 과학법)을 통과시켰다.

☞ 관련 글 보기 : ‘반도체 산업 전망, ’22년을 통해 시장의 미래를 바라본다!’

이후 미국 마이크론은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뉴욕 주에 공장을 신설하겠다고 밝혔고 삼성전자와 SK그룹도 각각 2000억 달러, 220억 달러 등의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유럽 각국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독자 생산을 위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50년간 이어진 반도체 패권전쟁은 세계화의 균열과 맞물려 더 치열해지고 있다.

또 다른 50년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